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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란 일의 방식까지 디자인하는 사람”...주얼리디자이너 정재인

한국적인 팝아트로 사랑받는 ‘주얼리 외교관’ 민휘아트주얼리 정재인 디자이너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내구성, 기능성 등 기본적인 제품의 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디자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무형의 가치를 통해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디자인은 가장 강렬하게 브랜드의 이미지를 형상하고, 경쟁사들과 차별화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기계와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 지식과 숙련된 기술은 더 이상 디자이너의 최고 덕목이 아니게 됐다. 세상을 남다른 시각으로 보고, 독보적인 디자인을 해내는 디자이너는 수 억 원을 주고라도 영입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른다.

실제로 유능한 디자이너는 한 브랜드의 운명까지도 좌우한다. 모노그램에 한정되어 있던 ‘루이비통’은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한 뒤 전 세계 패션리더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또한, ‘이안 칼럼’은 할아버지들이 타는 차로 인식됐던 ‘재규어’를 간결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로 재정의 했다고 평가받는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작업은 몇 배 이상으로 힘든 작업이다. 이미 깊게 뿌리박혀 바뀌기 힘든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마크 제이콥스’나 ‘이안 칼럼’과 같이 영특한 디자이너가 있을까. 민휘아트주얼리의 정재인 작가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남다른 감성과 표현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자인을 해낸다. 또한, 그 디자인을 전에 없던 방식으로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준다.

민휘아트주얼리 '정재인' 디자이너 (사진=민휘아트주얼리)

정재인 작가의 모친 김민휘 작가는 유네스코 등 해외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큰 상을 수상했다. ‘선덕 여왕’, ‘해를 품은 달’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크게 호평 받은 전통 장신구의 거장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브랜드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정재인 작가는 모친의 이름 ‘민휘’를 앞세워 엄마가 이어온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보통의 2세 디자이너가 엄마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독립적인 레이블로 승부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접근이었다.

그가 ‘민휘아트주얼리’의 이름으로 데뷔한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독창적이면서도 세련된 감각이 더해진 고전 장신구로 전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새로운 한국의 미를 창조해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변화가 필요할 때일수록 뿌리가 더 튼튼해야 하거든요. 저는 엄마가 세운 전통과 아름다운 유산들을 지켜 나가고 싶었어요. 기본으로 돌아가서 기본을 강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기본을 중시한다는 그의 철학은 수 십 년 역사로 다져진 엄마의 시간들이 현재를 살아가도록 되살려냈고, 브랜드의 핵심 자산인 우아함이 살아있는 디자인과 완벽에 가까운 품질의 경쟁력을 그대로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 변화를 담아내는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통해 ‘전통’을 유지 하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젊어지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장신구에 한국적인 팝아트를 결합해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사극과 현대극 그리고 인기 절정의 케이팝 그룹 엑소와 트와이스에도 민휘아트주얼리를 입혀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동시대의 상징을 장신구와 소품에 차용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혁신적인 스타일로 새로운 지평을 연 그녀의 행보는 우리나라 주얼리 업계에서도 수 백 년 간 하나의 목소리로 가치와 철학을 이어 온 프랑스의 ‘까르띠에’와 같은 명품 브랜드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정재인 작가의 가장 큰 업적은 ‘전통’과 ‘주얼리’를 ‘신한류’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원래 ‘한류’라고 하면 케이팝, 영화, 드라마, 화장품 등을 떠올린다. 그녀는 이 ‘한류’를 똑똑하게 활용했다. 한류의 영향력이 미치는 케이팝, 영화, 드라마를 통해 전통이 가미된 장신구와 현대적인 주얼리 디자인을 선보였다. 또한, 화장품 케이스까지 디자인하며 그가 만든 전통 장신구와 현대 주얼리 역시 자연스럽게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 ‘전통’과 ‘주얼리’라는 카테고리를 ‘신한류’로 이끌어냈다.

고전의 신비로운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의 주얼리는 같은 시대라도 정통 사극(영화 ‘사도’)과 퓨전 사극(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모두에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현대적으로 발현된 정재인 작가 특유의 동양적인 미감은 한류 드라마를 한층 더 빛내고 있다.

해외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은 그가 디자인한 작품이 전시된 박물관을 찾는다. 박물관 측은 그녀의 장신구가 전시된 뒤로 월 평균 이 천 여명의 관광객이 증가했다는 공식자료를 배포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의 SNS 채널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응원하는 해외 팬들도 여럿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한국미와 주얼리를 다루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유난스럽게 한복을 입고 있지도 않았고, 주렁주렁 큰 주얼리를 착용하고 있지도 않은 그의 깔끔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의 겉모습은 꾸밈이 없었지만 작은 주얼리부터 소품까지, 전통 소재와 기법을 활용해 구축한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가 뼈 속까지 한국의, 한국을 위한 디자이너임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젊은 디자이너답지 않게 꾸밈없는 그의 모습은 한복, 큰 장신구 등으로 치장한 겉모습으로 시끄럽게 마케팅 하지 않아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KBS ‘화랑’, SBS ‘사임당, 빛의 일기’, SBS ‘엽기적인 그녀’ 등 그가 참여한 사전 제작 드라마가 하나씩 방영되고 있다. MBC ‘왕은 사랑한다’, ‘품위있는 그녀’, ‘마이 온리 러브송’도 곧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그녀는 잘 포장된 귀한 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의 경우, 거의 2년 전에 제작된 작품인데요. 저는 얼마 전에 촬영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현장에 갔던 기억이나,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도 아주 예전의 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제가 드라마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벌써 5년이나 지났더라고요. 체감 상으로는 2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말이죠. 뭔가 익숙하거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까요."

"장신구 어떻게 보여요? 괜찮게 보여 지고 있나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하는 그녀에게서 드라마 주얼리 계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여제의 고고한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정재인 디자이너가 참여한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이미지=SBS)
정재인 디자이너가 참여한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이미지=SBS)

정재인 디자이너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쇼룸에 있는 작품들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며 일어선다. 마치 큐레이터처럼 전시관 안에 있는 작품들을 일일이 애정 어린 눈빛과 손길로 보듬으며 어느 작품의 어느 장면에 어떻게 나왔는지를 설명했다. ‘가면’의 수애에게는 상위 1%의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태희에게는 화려한 머리 장식을 설정한 이유와 작품과 장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눈앞에 그려지듯 자세한 설명에 보지 않은 드라마마저 시청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 두 작품도 아니고, 한 두 해가 지난 것도 아닌데 하나하나 귀하게 여기는 그녀의 마음에서 일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남들의 눈에는 잘 안 띄는 세밀한 곳까지 정성을 다 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드라마의 중요한 장면에서 나온 주얼리는 생명력이 부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것은 ‘(달의 연인)왕소(이준기 분)가 해수(이지은 분)에게 사랑의 증표로 선물한 머리꽂이’와 같은 식으로 주얼리만 봐도 캐릭터와 상황들이 담긴 장면들이 그려지게 되잖아요. 추억이 많아요. 스토리가 주얼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죠."

아이유의 의견을 반영해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보라색을 섞어 화려함을 주었고, 천년을 뛰어넘는 왕소와 해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주 패 자개 소재를 선택해 디자인을 구현했다고 한다. 착용한 배우, 그리고 대본의 스토리를 디자인에 구현한 방식 등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신구를 장신구 그 자체만이 아닌, 스토리 속의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접근하는 그만의 작업 방식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도 정재인 작가는 드라마의 장면 장면마다 정성을 쏟고, 남들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서 꼼꼼하게 작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저 지나가는 소품도 감독으로 하여금 한 번 더 찍게 만든다.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 번 더 돌려보게 만들어 인터넷으로 한 번 더 화제가 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김수현이 소장했던 주얼리 참이 달린 USB는 수많은 짤을 양산하며 인터넷을 점령했다. 평범한 USB라는 아이템으로 드라마 장면이 널리 회자되도록 살려낸 데는 그녀의 남다른 디자인 감각의 공이 컸다.

테이블 한 구석에는 현재 작업 중인 드라마의 대본들이 눈에 띄었는데, 마치 연기자의 대본처럼 빽빽하게 체크가 돼 있다. 16회 주얼리를 만들려면 1회부터 캐릭터 별로 주얼리 스타일과 변하는 상황들을 계속 체크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개연성을 위해서는 연결고리를 찾아 주얼리 역시 스토리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인 작가의 완벽주의와 치밀한 노력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같은 사극이라도 ‘장옥정’ 김태희와 ‘달의 연인’ 아이유는 다르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엽기적인 그녀’ 오연서 역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입었다.

일반적으로 ‘주얼리’라고 하면 부유한 소수 계층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주얼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보다 쉽고, 또 다양하게 접근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얼리’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방식은 ‘전통’에도 적용된다. 그녀는 멀게만 느껴졌던 ‘전통’을 친숙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친숙하지만 그녀 특유의 우아한 아우라 덕분인지 결코 우습거나 천박하지 않다. 그녀가 현대화한 전통은 친숙하지만 ‘우아한 기품’이 살아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민휘아트주얼리의 이름으로 선보여지는 작품에는 ‘고전’의 모티브가 3D 레이저 등 첨단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재구성되는 등 최신 기술과 장인의 손이 만나 전통의 정성과 현대의 기법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느낌이 살아 있다. ‘전통’ 장신구라도 기존의 클래식한 멋은 가져가되 젊은 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현대미를 넣는다. 그는 지금 독창적인 그만의 작품세계를 꾸준하게 열어가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 ‘아가씨’ 중 배우 김민희가 착용한 정재인 디자이너의 스피넬 귀걸이 (이미지=영화 '아가씨' 중에서)
영화 ‘아가씨’ 중 배우 김민희가 착용한 정재인 디자이너의 스피넬 귀걸이 (이미지=영화 '아가씨' 중에서)

‘까르띠에’ 제품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면’ 속 수애 다이아몬드 목걸이부터 시대극 영화 ‘아가씨’ 속 김민희의 스피넬 귀걸이, 엑소와 트와이스의 모던한 액세서리 등 최고급 럭셔리에서 심플한 모던함까지 그 사이에 놓인 수많은 감각과 정서를 저마다 색다른 그림으로 그려낸다. 작은 주얼리지만 그 안에 수많은 상징과 디테일을 치밀하게 만들어 넣어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정재인 작가의 작품이 단순히 미적인 것을 넘어서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까닭은 그녀만의 타고난 감각과 신선한 아이디어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작품만의 스토리를 담는다는 그녀의 철학 때문이지 않을까. 명확한 철학과 근거로 구성된 스토리가 뒷받침될 때,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될 수 있으며 비로소 새로운 디자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드라마와 그녀의 주얼리가 더 잘 맞아 떨어지고 시너지가 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도 근본적인 이야기나 큰 그림 등과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에요. 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하죠. 단순히 예쁘거나 세련되게 보여 지는 스타일에 치중하지 않고 디자인의 출발 지점, 그리고 의미와 핵심 가치를 담아야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적으로 본다면, 너무 대중적인 것보다는 유니크한 것을 선호해요. 늘 똑같은 것은 재미없죠. 모든 것은 이전보다 발전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늘 본질적인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해요. 디자인에는 변화가 생기더라도 말이에요. 시간이 흐른 뒤에 봐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아야 하죠.”

트렌디하면서도 클래식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차별화된 매력이 느껴지는 디자인이 그의 장점이지만 그는 착용감 또한 매우 중시하는 디자이너다. 그는 늘 ‘착용자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웨어러블한 디자인’인지를 면밀하게 살핀다.

“주얼리를 착용했을 때, 편안함과 함께 좋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지다 보니까 외부의 평가를 많이 받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외부의 평가보다 착용한 사람의 만족도가 훨씬 더 중요해요.”

창의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면서도 편안한, 다시 말하면, 독특한 디자인이 기능적인 요소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에는 창의성과 편안함 두 가지의 요소가 모두 담겨있다. 그녀의 주얼리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에 착용감까지 뛰어나서 격한 안무로 가득한 엑소, 트와이스, 슈퍼주니어, 신화 등 아이돌 그룹의 무대에서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다양한 가수의 주얼리 디자인을 통해 각자 다른 매력을 극대화시키고, 트랜드를 선도해 온 그는 곧 틴탑 무대에서 선보일 하네스 주얼리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틴탑’의 컴백 무대에서 착용될 ‘하네스 주얼리’인데요. 저도 이번에 처음 시도해 본 디자인이에요. 안무 영상을 미리 봤는데 멤버들이 누웠다가 일어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춤이 과격해서 무대에서도 착용이 가능한 지는 좀 봐야 될 것 같아요. 멋있는 것도 좋지만,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서 동작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저는 이런 것들이 좋아요. 지난 앨범 ‘사각지대’ 때도 ‘체인 부토니에’를 콘셉트로 잡고, 무대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주얼리를 선보였는데 재밌었어요. 주변의 반응도 좋았고요. 그렇게 앨범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제시해서 무대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아무리 아이돌 그룹이라도 전에 보지 않던 새로운 아이템을 선뜻 시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그는 그 마음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답했다.

“많이 망설여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근데 저와 작업했던 분들은 항상 (새로운 디자인들을) 선뜻 잘 받아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저를 믿어준다는 느낌도 들고요. 저도 새로운 아이템을 디자인할 때는 공부를 많이 해요. 공부를 통해 디테일을 신경 쓰고, 그 안에 어떤 가치를 담으려고 하죠. 그렇게 탄생한 주얼리는 전체적인 룩으로 봤을 때도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는 것 같아요. 결국 주얼리를 착용한 사람의 가치가 높아져야 하니까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도 신경 쓰려고 해요. 제 주얼리를 착용한 분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면 기쁘니까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디자인 영역은 그 범위가 넓어져 일상의 공간으로도 들어오고 있다. 화장품, 가구, 의자, USB,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산업군과 콜라보레이션을 펼치며 산업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한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은 작은 변화로 일상에 특별함을 선사해준다. 그가 디자인한 산업 제품은 독특하면서도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여 실용적인 것이 특징이다.

쇼룸에 전시된 경대가 눈에 들어왔는데 은빛이 감도는 블랙 유리로 마감해 고급스러운 광택과 은은한 색감이 돋보였다. 곧 출시될 모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탄생된 작품이라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우아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 ‘가지고 싶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금속과 섬세함이 강점인 주얼리는 콜라보레이션 하기 매우 적합한 소재죠. 주얼리는 어디에도 적용이 가능한 ‘원 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라고 할 수 있어요. 산업 디자인을 할 때는 디자인이 물론 중요하지만, 실용성도 많이 고려해요. 즐겨 사용하게 만들어야지 관상에 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디자인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실용성을 갖추고, 의식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 좀 더 가지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야 해요. 타 브랜드 기업에서 디자인을 의뢰받는 경우, 그 브랜드의 색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조율해야 될 점도 많고, 고려해야 할 점들도 더 많죠. 브랜드에 소속된 디자이너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눠요. 다들 정말 훌륭한 디자이너 분들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정재인 디자이너가 참여한 KBS 드라마 ‘그 여자의 바다’ (이미지=KBS)
정재인 디자이너가 참여한 KBS 드라마 ‘그 여자의 바다’ (이미지=KBS)

인터뷰 도중 KBS 2TV 드라마 ‘그 여자의 바다’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정재인 작가는 “전화라도 좀 하고 오시지”라면서도 매우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배우들은 예의를 갖춰 화장을 하고 오고, 민휘아트주얼리를 착용하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연신 “너무 예쁘다. 정말 다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며 드라마 끝난 뒤에 착용했던 주얼리를 사겠다며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세월이 흐른 뒤에 착용할 주얼리에 대해서도 정재인 작가에게 꼼꼼하게 물어왔다.

“이런 것도 있는지 몰랐다”며 커플링을 의뢰한 배우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맞추고 싶은 주얼리가 있다며 의논하는 배우도, 또 곧 형제가 결혼한다며 예물 상담을 하러 온다는 말도 들려왔다.

특히, 배우 한유이 와는 SBS 드라마 ‘잘 키운 딸 하나’를 통해 배우와 주얼리 디자이너로 만났던 일들에 대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우 분들이 극 중에서 착용할 주얼리에 대해 의논하러 쇼룸에 종종 오시고는 하세요. 스타일리스트 분이 따로 있지 않은 사극과 시대극의 경우, 그 빈도수가 더 잦은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저도 더 좋은 영감을 받고는 해요.”

항상 지금 민휘아트주얼리를 착용하고,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에게 가장 애정이 간다는 정재인 작가는 대화 내내 애정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배우들이 돌아간 다음에도 배우들과 프로그램에 대해 애정 어린 말들을 가득 늘어놓았다.

“함께 작업하는 분들께 좋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방금도 일부러 우리 주얼리를 착용하고 왔다고 하잖아요. 계속 ‘예쁘다’고 말씀해주시고요. 우리 주얼리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그런 배려 깊은 마음들을 또 받고 있어요. 좋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특히, ‘그 여자의 바다’ 같은 경우, 시대극인데 주얼리가 정말 많이 나와요. 많은 분들의 배려를 받으면서 작업하고 있는 정말 행복한 작품이에요.”

그가 디자인에 관해 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의 디자인을 착용한 배우에게 고마워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소통하는 능력과 공감 능력, 세심하게 감성을 읽는 능력이 그가 많은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대중문화 콘텐츠가 구성될 때, 주얼리 혹은 장신구가 독립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다. 미술팀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의상팀, 분장 미용팀, 소품팀 등의 하위 영역으로 분류된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장신구가 손에 착용되거나 옷에 붙으면 의상팀의 영역, 머리에 착용되면 미용팀의 영역, 전시가 되면 소품팀의 영역으로 분류가 되고는 한다. 케이팝에서는 스타일리스트가 담당하기도 한다.

정재인 작가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장신구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각 분야와 소통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습처럼 굳어진 관행을 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혁신과 참신한 기획을 바탕으로 그만의 특수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세상을 보는 관점, 자신의 레이블이 대변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갈고닦으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가 대단한 점은 일반적인 생각과 큰 덩어리 중심의 미술 문화에 주얼리 분야의 독립적인 필요성을 일깨워 냈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말에 정재인 작가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 내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람들이 주얼리로는 대중문화계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고 수도 없이 말했어요. 사극과 현대극, 케이팝 모든 분야의 주얼리를 맡는 것, 그리고 미술 파트에서 장신구 파트를 만드는 것 모두 다요. 물론, 아직도 제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나서서 일을 따오는 성격도 아니니까요. 제게 일을 의뢰해주시는 분들께 항상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 옆에 정말 좋은 분들이 많기에 가능한 일들이에요.”

정재인 작가의 엄마 김민휘 작가도 ‘선덕여왕’, ‘제빵왕 김탁구’, ‘마이더스’, 해를 품은 달‘ 등의 통해 드라마의 장신구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장신구가 독립적인 영역으로 서 있지 않았던 탓에 김 작가는 속상한 일도 겪었다. 이 일을 지켜 본 딸은 각 분야로 분리되어 있던 장신구들을 총괄하여 디자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장신구 영역이 바로 서면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 시도한 작품이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였다. 큰 경험이 없던 신인 디자이너가 매서운 심판을 받는 드라마를 첫 무대로 선택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작의 장신구 파트를 단독으로 맡아서 하는 것은 여태껏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감했고, 열정이 넘쳤죠. 불안한 마음도 없었고,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늘 제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느꼈어요.” 특유의 직관과 감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의 길은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국 장신구의 붐을 일으켰다. 그녀가 만든 장신구가 박물관에 보관되고, 전시되고, 또 MD 상품으로 개발되면서 매달 수 천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등 환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닌 사업 채널로 이어졌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대중문화계에서 그녀의 자리, 그리고 그녀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경력이 없던 자신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장신구 파트를 맡겨준 부성철 감독, 제작사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방식이기에 그녀가 주장하는 말들이 받아들여질지 고민이 많았는데, 스태프들의 많은 배려 덕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한국을 넘어 중국 등 ‘아름다운 장신구’가 선보여진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게 됐다.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입소문이 나서 이후, 정 작가가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똑 부러지는 그녀는 시스템을 바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지만, 누구나 납득할 만큼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일에 대한 일관된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일의 가치가 인정받게끔 부단히도 노력했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이끌어 냈다. 그 합리적인 마인드와 원칙,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은 방송계 사람들 다수의 공감을 샀고, 일의 범위가 순식간에 넓어지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옆에 있던 정재인 작가 어머니인 김민휘 작가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재인이는 주얼리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아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주얼리에 접근하니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주변의 환경을 살피고, 남들을 배려하는 예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어 했죠.”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녀 역시 힘든 적도 있었다. 장신구가 의상, 분장과 미용, 소품 등 기존의 다른 미술팀 카테고리 안의 하위 영역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원래 내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뺏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런 마음은 아니고,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른 것일 뿐이라는 소신을 내비췄다. 그녀가 관여하는 것은 장신구에 한해서지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녀는 대본에 중요한 주얼리가 나오면, 감독님이나 작가님과 상의를 하고, 의견을 받아서 진행한다. MD 상품일 경우, 제작사와도 상의한다. 근데 그렇게 협의를 통해 진행한 아이템이 현장에서 바뀐 적도 있다고 한다. 후에 전해들은 이야기는 ‘상황을 모르는 B팀 감독이 촬영했다’, ‘정재인 작가가 물건을 제 때 보내지 않은 줄 알았다’였다. 하지만 다 핑계일 뿐이었다. 결국 상황에 맞지 않는 아이템이 중요한 장면에 비춰지게 됐고, 그 아이템에 대한 글들이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추억하는 매개체인데 극에서 모두가 착용하고 있던 평범함 소품으로 촬영되니까 이해가 안 간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소품만 보더라도 중요한 장면들이 떠올려질 정도로 독특하게 디자인되어야 하는 아이템들이 있어요. 근데 (중간에 협의 없이 교체되는 과정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하면 너무 아쉽죠. 저만 아쉬워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다들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제는 중요한 아이템인 경우, 이것이 민휘아트주얼리 것인지를 먼저 물어보는 상황이 오게 되기도 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는 매 장면 제작사 측에서 민휘아트주얼리의 것인지 확인하는 문자들을 먼저 보내온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이 예쁜 것인지 보다 민휘아트주얼리에서 보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큰 감동을 받았죠.”

그녀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협업하지 못하는 마음들에 불필요한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상 디자이너는 의상을 잘 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의상 디자이너가 주얼리까지 했다고 해서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 더 플러스 되지 않는다. 주얼리는 주얼리 디자이너가 해야 전문성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본다. 그리고 각각의 분야에서 완성도가 높아지면 결국 거기에 속한 각각의 분야가 또, 하나하나 더 멋져 보이기 마련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전문화와 분업화가 중요한 세상이 됐다. 각자의 전문 분야에 집중하고 협업해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갔다.

“각 파트가 고유성을 띄지만 결국에는 서로 영향을 받아요. 다시 말하면 하나하나보다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내가 중요하게 된 것이죠. 공생하고 협력해야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작은 것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창작에 매달리는지 그 방향성을 잃게 되기도 하고요. 사소한 지점들을 경쟁이라 생각하지 말고, 연결 되는 지점들을 어떻게 활용해서 시너지 날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전문 영역 외의 부분들은 분담하고, 다방면으로 상호 보완이 이루어지는지를 고민하면 결국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협업은 개개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에요.”

그녀는 민휘아트주얼리의 작업 역시 공동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자연스럽게 팀에게 돌렸다. 그녀는 회사 내에서 오랜 기간 협업을 해왔기 때문에 누군가와 협업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민휘아트주얼리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어요. 갓 들어온 신입도 있고, 50년 이상 세공 경력을 갖추신 명장님도 계시죠.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하고 있어요. 우리 내부에서 협업을 통해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고 있기에 저 역시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걸요.”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