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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좌절했지만,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기

[화제의 책]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동안 혼자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정치가 아닌 삶을 공부하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정치에 많은 기대와 미련을 가졌지만, 정치는 결국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었다. 그 대신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공부하고 생각해 온 것들을 이 힘든 시대를 함께 사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 책은 상처받고 좌절했지만,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나라 제1세대 정치평론가인 유창선 박사가 작년에 책을 출간하면서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 책은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든 이 시대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라는 진솔한 고민을 그대로 제목으로 올린 자기성찰에 관한 책이고, 설사 세상의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주눅 들지 말고 함께 손을 잡고 당당하게 살아 가자고 하는 응원가 같은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왠만한 고전의 유명인사들은 다 만날 수 있다. 책 읽기 힘든 시대에 이 책 한권만으로도 충분히 지식과 지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저자인 유창선 박사는 오랫동안 정치평론가 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신의 활동이 좌우되는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외부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내 삶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그 생각들을 써 내려갔다고 말한다.

(사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유창선 저자

인문학 속에는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가에 대한 고민과 답이 있다. 저자는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분야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읽어 가며 그 속에서 우리 시대의 어려운 삶을 감당해 나갈 지혜와 통찰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인문학의 수많은 고전들과 우리 시대의 삶이 감동적으로 만나는 성과가 이 책에는 담겨있다.

책은 기본적으로 읽히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잘 읽힌다. 소크라테스가 내 앞에 앉아 내 삶의 고민을 풀어 준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살다간 고흐의 이야기는 위안을 준다. 그림, 음악, 시를 보여주면서 남의 기준에 끌려가는 우리 삶에 대해 경고하고 손을 내밀어 같이 걸아 가자고 한다.

이 책은 삶이 힘들어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나 그 눈물을 직접 닦아주는 대신, 먼저 자기의 힘을 길러, 더는 눈물 흘리지 말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설사 삶이 나를 배반한다고 해도, 모두가 내 잘못은 아니니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은 시장에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니, 나를 사랑하고 다시 태어날 것을 권한다. 인간을 너무도 거칠게 내몰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의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있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저자의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정치평론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책을, 그것도 자기 것으로 깊이 있게 읽어냈을까 감탄할 정도다.

우리는 이 책 한 권으로 고전 100권의 힘을 그대로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부터 칸트와 니체를 거쳐 푸코와 데리다에 이르는 철학, 소포클레스와 오비디우스에서 시작하여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카프카, 카뮈에 이르는 문학, 그리고 다윈과 윌슨, 도킨스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수 많은 다면적 통찰들이 놀랍게도 이 한 권의 책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세상을 보는 기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지적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을 사는 것이 원래부터 힘든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생존과 욕망에 눈 멀지 않아도 되는 착한 세상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든 삶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임을 저자는 숨기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려울수록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 정치보다도, 어떤 이념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그를 위해 우리는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것이 내가 원했던 삶인가?' ‘ 이렇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답을 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함께 손을 잡고 고민하게 한다. 끝없이 강요받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잃어 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다. 그러나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밀실 속으로의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배려를 통해 나를 새롭게 만들어갈 때,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손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우리 삶의 고민이 고전의 대가들과 함께 펼쳐져 있다. 소크라테스와 니체와 톨스토이와 고흐가 자신의 삶에서 느꼈던 고통과 번민이 오늘 우리의 고민과 손을 잡으며 잃어버린 자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철학을 우리 삶의 울타리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할 여운을 남기며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무거울 것 같았던 인문학 책이 내 삶의 동반자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

고속도로를 달리는 책이 아니라 주변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며 국도를 달리는 책이 이 책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면 천천히 가야 한다. 이 책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며 읽으면 좋다. 그래야 마음에서 깊은 울림이 일어날 수 있다.



김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