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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종재래돼지를 키우는 이유

[우리를 지키는 사람들] 글 이도헌 / 성우농장 대표

나는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금융업을 하다가 약 6년전, 충남 홍성에 귀농하여 돼지농장을 경영한다. 우리 농장은 ‘일반 백돈'(삼원교잡종)이라 불리는 비육돈 생산을 위한 공장형 축사와 함께 버크셔, 듀록, 피에트래인,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재래돼지 등 여러 품종의 돼지를 실험 방목하는 야외 방목장형 축사를 갖추고 있다. 농장에는 약 7000두의 돼지가 자라고 있고 매달 1천두의 비육돈 돼지를 출하한다. 나는 돼지 생산자로서 파트너쉽과 관련 정보수집을 위해 매주 서울에 올라가 먹거리와 음식 관련분야의 지인들을 만난다. 그럴 때, 가끔 지인들에 이런 질문을 받는다.

“대표님, 몇 달 동안 정들어 키운 돼지를 결국 도축장에 보내야 하는데, 그럴 때 심정이 어떤신가요?”

“마음이 그리 좋지 않지요. 특히 방목하면서 봄에는 유채꽃 줄기 뜯어서 먹이고 여름에는 차가운 지하수 물로 직접 등물해 주며 키운 돼지를 내 보낼 때면 마음이 짠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육식을 하는 존재이니 가축을 키워서 잡아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돼지가 태어나 자라며 우리 농장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잘 대해주려는 마음입니다.”

(사진) 이도헌 대표가 충남 홍성의 성우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토종재래돼지와 붉은돼지 '듀록' 나에게 돼지는 고마운 존재다. 우리 농장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10년 이상을 근무한 농장장의 딸도 돼지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고, 멀리 태국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 직원도 매달 받은 월급을 태국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다. 나 역시 금융업을 떠나 영농 경영인으로서의 인생의 1막 2장을 활짝 열어준 존재가 바로 돼지다. 우리 농장 돼지의 대부분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갖춘 공장형 축사에서 자라고 있다. 나는 돼지가 자라는 동안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동물복지’ 기준에 부합하는 축사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유럽의 경우는 동물복지 기준에 부합하게 농장이 대다수이지만 우리 양돈산업의 경우에는 ‘동물복지’를 도입한 양돈농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돼지 생산 원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존의 사계절 날씨는 사라지고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혹한으로 치닫는 날씨가 되었다. 대부분의 양돈농가의 돼지축사는 지은 지 10~20년 넘는 건물이다. 이상 기후의 변화에 대처하는 에어컨 설치 또는 난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양돈농가는 제대로 된 돼지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폭염은 돼지의 임신과 출산율을 떨어뜨린다. 날씨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지에서 들어오는 돼지고기 수입육 역시 양돈 농가에게는 위협적인 요소다.

고기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가성비와 만족도를 철저히 따지는 냉엄한 소비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양돈농가는 늘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착한(?) 가격의 돼지고기를 찾기 때문에 돼지 농장은 소비자의 필요를 맞추기 위하여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보니 새끼를 많이 낳는 ‘다산종 품종(삼원교잡종)’을 선호하게 되고 같은 양의 사료를 먹여도 더욱 빨리 쑥쑥 자라는 돼지 종자를 선호한다.

사실 돼지는 각각의 품종 별로 자라는 속도도 다르고 그 맛도 다양하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맛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고기값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순간에는 마음이 달라진다. 유색돼지에 속하는 버크셔나 우리 고유의 토종재래돼지의 경우는 일반 비육돈인 백돈(삼원교잡종)보다 몸집도 작고 자라는 속도도 더디다. 일반 비육돈이 6개월 동안 115킬로그램의 무게로 자라는데 비해, 토종재래돼지는 10개월 이상을 키워도 80킬로그램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제 아무리 맛이 좋고 다양한 맛을 선호한다 해도 우리 돼지시장 소비자의 선호 1순위는 맛도 품종도 아닌 저렴한 가격이다. 고기 품질 별로 값을 매기는 한우와 달리 돼지고기는 값싼 가격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사진) 토종재래돼지 복원을 함께 하는 분들 (왼쪽부터 이도헌 대표,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 서은경 작가, 김욱성 셰프, 문정훈 서울대 농대 교수)
(사진) 토종재래돼지 복원을 함께 하는 분들 (왼쪽부터 이도헌 대표,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 서은경 작가, 김욱성 셰프, 문정훈 서울대 농대 교수)
나는 돼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양한 품종의 돼지를 선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특히 우리 토종재래돼지 종자를 꼭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새끼 수가 적고 성장이 더딘 우리나라 토종 재래돼지는 맛은 뛰어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나서 거의 유통이 불가한 상황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우리 토종재래돼지 종자를 가지고 있는 경북 포항의 송학농장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송학농장의 대표인 이한보름 대표와 의기투합해 토종재배돼지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한보름 대표는 재래돼지를 복원한 부친의 과업을 이어 수익이 안 되는 재래돼지를 20년 동안 보존하고 있고 우리 성우농장은 송학농장의 재래돼지를 분양해 와서 마을 방목장에서 실험 사육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농축산물의 품종 다양화를 위한 노력은 한 개인의 몫이 아니라 국가나 양돈업계가 끌고 갈 일이다. 송학농장은 우리 재래종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고 나 역시 그 노력에 동참하고 싶다.

우리 농장은 돼지 소비시장에 다양한 맛의 돼지를 까다로운 감성으로 소비할 새로운 니즈가 존재하는지 살피는 중이다. 다양한 품종의 돼지를 실험 방목하여 도시의 솜씨 좋은 셰프에게 돼지의 각 품종과 부위에 맞는 요리를 개발하여 소비자 시식회를 열고 있다. 나는 돼지와 사람의 관계에서 소위 소비, 시장경제 근간을 가끔 생각 해본다. 수익을 위해서는 농장의 규모를 늘리고 첨단화하여 규모의 경제도 실현해야 하지만 농촌이 잘 살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돼지농장이 아니라 소규모 농가형 농장이 필요하다.

마을과 농장이 함께하는 돼지의 꿈

우리 농장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위치한 우리나라 여느 시골부락과 비슷한 작은 마을이다. 젊은 인구는 거의 도시로 떠났고 20년 전에 비해서 인구의 40~50%가 감소하였다. 현재 40여 세대 70명 정도의 주민이 등록되어 있으나 마을에서 농사 짓기 보다 주변 도시로 일 나간 주민도 꽤 있다. 귀농하여 농촌과 농민의 몰락을 보게 되면서 나는 마음이 무겁다. 농산물의 가격 하락으로 갈수록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농장은 마을에 위치해 있고 나는 늘 우리 마을과 농장이 서로 돕고 이익을 나누는 상생을 꿈꾼다. 그 이유는 내가 돼지를 키우며 늘 마을에 죄송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름 농장 환경 관리에 최선을 다하지만 돼지농장은 분뇨 냄새가 많이 회피 시설이다. 나는 마을에 수익이 되는 무언가를 구상하였고 마을 회의 때 제안하였다.

(사진) 최근 열린 마을잔치 '조롱박 축제'
(사진) 최근 열린 마을잔치 '조롱박 축제'
우리 농장에서 돼지 시험 방목을 시작한 지 3년째가 된다. 농장 방목장에 방목하던 돼지를 올해부터는 마을 방목장을 만들어 마을의 자산으로 방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첫 번째 돼지가 바로 포항 송학농장에서 기증받은 우리 토종재래돼지다. 토종재래돼지의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유통 채널이 생겨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 토종 재래돼지 방목은 우리 마을의 수익사업으로 완전히 전환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 아래,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부녀회장님은 하루 2차례 재래돼지에게 먹이를 주며 지극정성으로 돼지를 돌보고 있다. 농장 경영에 수익을 내기 위해 내 머리 속에는 늘 ‘원가경쟁력 유지’, ‘생산성 제고’ 를 위한 여러 가지 고민이 맴돈다. 하지만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약간의 수익이 나서 우리 농촌의 수익창출에 새로운 대안이 되고 우리 마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다.

나는 우리 농장과 마을을 상생시켜 줄 고마운 토종재래돼지 ‘수 십 마리’가 마을 뒷산 어귀의 텃밭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장면을 상상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생산성논리 때문에 사라져간 우리 재래돼지가 우리 농촌에 다시 부활하여 마을 수익의 복덩이로 이쁨받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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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도헌 대표는 충남 홍성에 자리한 농업회사법인 ㈜성우 대표이사이다. 1990년대에 뉴욕 월가에서 헤지펀드 운용에 참여하여 첨단 금융기법을 접했으며, 1995년 28세에 금융 컨설팅-ICT회사를 설립,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동남아에서 아시아개발은행 인도네시아 자문역,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컨설턴트로 활동했고, 귀국 후에는 한국투자증권에서 해외사업 담당 상무를 역임한 국제 금융 및 ICT 전문가출신이다.

저성장 경제에서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서 농업과 에너지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축산업에 주목해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나 재무위기에 빠진 농장의 구원투수로 2013년 성우법인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축산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금융과 ICT 산업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과 생태가 융합된 새로운 생태농축산업,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농축산업을 꿈꾸며 인생 2막을 홍성의 시골마을에서 펼쳐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하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