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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여성CEO가 뛴다] ‘철의여인’ 이명희 총괄회장, 신세계를 유통명가로 만들다

삼성家 최초 여성 CEO···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
학창시절 꿈은 ‘현모양처’···아버지 권유로 신세계 경영 참여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입사···1998년 회장 등극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과감한 경영스타일로 별명 역시 ‘리틀 이병철’

[FETV=박지수 기자]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은 삼성가(家) 최초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호텔과 백화점 점포 몇 개를 기반으로 신세계그룹을 재계 11위의 국내 최고 유통 명가(名家)로 키워낸 이 총괄회장은 재계에서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이 총괄회장을 일컫는 또 다른 수식어는 ‘리틀 이병철’이다. 부친인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공격적인 추진력과 경영스타일이 이 총괄회장과 닮아서다. ‘고객 제일주의’를 중시하는 이 총괄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기업 신세계. 이 총괄회장은 이제 국내 유통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 됐다.

 

1943년생인 이 총괄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3남 5녀중 막내딸로 태어나 부친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 총괄회장은 이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늦깎이 경영인’인 이 총괄회장은 1967년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을 만나 결혼한 뒤 한동안 가정주부로 지냈다. 학창 시절 꿈이 ‘현모양처’였을 정도로 이 총괄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아내이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랬던 이 총괄회장이 경영 일선에 뛰어들게 된 건 부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영향이 컸다. 이 선대회장은 “여자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남자 못지않게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 총괄회장에게 경영에 참여할 것을 설득했다. “백화점 사업부를 맡아서 운영해 보라”는 부친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이 총괄회장은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입사했다. 이 선대회장은 회장직을 물러난 뒤 1년에 4차례 정도 일본을 방문했는데, 이때 이 총괄회장을 항상 동행토록 하며 각별하게 애정을 쏟았다.

 

이 총괄회장의 경영능력은 삼성그룹에서 신세계그룹이 독립하면서 빛을 발했다. 이 총괄회장이 1991년 삼성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며 별도로 경영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신세계백화점은 총 2개 지점(본점·영등포점)과 조선호텔이 전부였다.

 

미래를 설계하는 이 총괄회장의 과감한 추진력은 이 선대회장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 총괄회장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미국에서 여행을 하던 중 프라이스클럽(회원제 창고형 할인점)과 월마트(대형 할인점)를 본 뒤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에 맞는 새로운 할인점 업태를 개발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신세계그룹은 1993년 국내 대형 할인점 1호점인 이마트 창동점을 열면서 백화점에 이어 대형마트까지 외연을 넓혔다. 스타벅스를 국내에 들여오자고 제안한 것도 이 총괄회장이다.

 

이 총괄회장은 1997년 공정거래법상 삼성그룹과 완전히 계열분리 되면서 신세계백화점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1998년 말에는 남편인 정재은 당시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아 신세계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총괄회장은 1999년 사명을 ‘신세계백화점’에서 ‘신세계’로 바꿨다. 그해 이 총괄회장은 구학서 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사장)과 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현재 오리온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며 전문경영인 시대를 열었다. 이 총괄회장은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는 이 선대회장의 조언에 따라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해 왔다. 

 

1997년 삼성그룹에서 법적으로 계열분리할 당시 1조5000억원 수준이던 신세계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35조8293억원(신세계+이마트)으로 껑충 뛰었다. 재계 순위 역시 1997년 33위에서 지난해 기준 11위로 22계단이나 수직 상승했다. 협동조합인 농협을 제외하면 재계 10위다.

 

재계의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이자 ‘소리 없는 여장부’로 불릴 정도로 이 총괄회장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총괄회장이 신세계에 첫 입사한 이후 45년이 지난 지금 이 총괄회장은 그룹 경영 대부분을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물려준 상태다. 현재는 신세계그룹 총수(동일인) 지위를 유지한 채 정 회장 뒤에서 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주요 계열사 CEO들에 대한 인사권만은 여전히 본인이 직접 행사하기도 한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5년 12월 당시 정유경 부사장을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마트·식품·호텔 부문은 정용진 회장이, 또 백화점·면세점·패션 부문 등은 정유경 총괄사장이 맡는 방식을 통해 남매 분리경영 체제의 초석을 다졌다. 

 

이 총괄회장은 여전히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각각 1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이자 그룹 총수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20일 계열사 대표이사의 약 40%를 교체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인사는 이 총괄회장이 중심을 쥐고 내린 인사로 알려졌다. 당시 이 총괄회장은 ‘신상필벌(信賞必罰·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리고 죄를 지었으면 징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 원칙을 적용해 임원 인사를 진두지휘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 총괄회장이 경고장을 날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룹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의 다음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