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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다이어트 성공기 연재] (11)새내기가 됐는데 왜 즐기지를 못하니?

대한민국 서울 '쇼핑 1번지' 명동.

오랜만에 찾은 백화점 실내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온갖 신상품과 화려한 옷들이 마네킹에 걸려 뽐내고 있었다.

“미진아, 이거 어때?”

아람이 집어 든 옷은 밑단이 짧고 짝 달라 붙는 검정 가죽 재킷.

“어머~, 손님. 지금 입으신 스키니 팬츠에 딱 이네요!“

“…….”

미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점원은 미진을 제치고 아람 옆에 서서 가죽 재킷 입는 것을 도와줬다.

“지금 입으신 거~ 아무나 못 입으시거든요. 보시다시피 핏이 어깨랑 몸통이랑 팔뚝이 꼭 끼는데, 아무래도 가죽이다 보니 막 늘어나진 않아요.”

“음……. 네, 좀, 끼긴 하는것 같은데…….”

“손님, 잠시만. 제가 친구 분 옷 입는 거 좀 봐 드리려고.”

“네? 아, 네.”

이미 한 켠 옆으로 밀려난 미진은 점원의 말에 아예 거울 속에 비치지 않도록 매장 다른 코너에 가서 섰다. 정말이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는 아람은 그 스키니 청바지에 단화만 신었는데도 가죽 재킷이 더해지니 훨씬 더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이건 끼는 게 아니고, 딱 핏이 원래 이래요. 사이즈가 44인 분들한테나 맞는 옷이라……. 저희도 아무한테나 이렇게 못 권해 드리거든요~!”

“아~ 그래요?”

점원 언니의 말에 아람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미진은 괜히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쓱쓱 밀며 살펴보았다. 바로 그때 눈에 띈 연분홍색 원피스. 미진은 자신도 모르게 원피스를 꺼내 들어 살펴 보았다. 허리에는 연분홍색과 대조적으로 하얀 끈이 둘려 등 뒤에서 곱게 리본으로 묶였다. 역시 하얀 색으로 만들어진 목둘레선과 치마끝자락에는 하얗고 촘촘하게 레이스 장식이 달려있었다. 아주 어릴 적 꿈꿨던 신데렐라가 파티에서 입는옷이 있다면 바로 이 옷일 것 같았다.

“언니, 그거 원사이즈예요.”

언제 보고 있었는지, 말을 한 것은 가게 점원이었다.

“네?”

“원사이즈라고요.”

“아…….”

퉁명스러운 점원의 얼굴과 말투에 미진은 기가 죽었다. 돈 주고 옷 사러 왔는데, 이건 마치 돈 꾸러 온 사람마냥 말 한마디 붙이기가 껄끄럽다. 미진은 용기를 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원사이즈가 어떤…….”

점원은 휘적휘적 다가오더니 미진 앞에 서서 그녀를 아래 위로 쓱 훑었다.

“언니, 사이즈가 몇이에요? 66은 좀 낄 것 같고. 77은 입으셔야 편하시겠네요.”

“네?”

미진은 그제서야 백화점에 왜 오랜만에 왔는지 기억이 났다. 수능이 끝나고 엄마와 옷을 사러 왔다가 55 사이즈의 옷을 입던 미진에게, 매장점원들은 66사이즈도 아니고 77사이즈의 옷을 권했다.

안타깝게도 미진이 입고 싶은 옷은 큰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 옷들도 많았고 힘들게 찾아도 막상 입어보면 옷태가 영 예쁘지 않아 쇼핑을 포기했었다. 편히 입을 후드 티셔츠와 겉옷만 몇 벌 사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한 살 빼고 예쁜 옷 사겠다던 미진의 다짐은 얼레벌레 몇 번의 실패 끝에 사라져 버리고 오늘에서야 다시 떠오른 것이다.

“이거, 집으신 거 원사이즈라고 사이즈가 하나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44, 55분들 대상이라.......”

점원은 말끝을 흐리고는 다른 옷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떠세요?”

“음…….”

점원이 보여준 옷은 카키색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야외에서 입는 바람막이. 덩달아 보여주는 옷은 비슷한 분위기의 팬츠. 미진이 입고 싶던 신데렐라 원피스하고는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 이었다.

“맘에 안 드세요?”

“네? 아……. 조금 여성스러운 옷이 필요해서요.”

미진의 말에 점원은 쉽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옷을 찾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 이건 어떠세요?”

이번에 그녀가 보여준 옷은 하얀 색 오버사이즈의 와이셔츠. 딱 임산부들의 불룩한 배를 가리기 좋은 디자인으로 보였다.

“음……. 예쁜데요. 그런데…….”

“한번 입어보세요~!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예쁘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점원은 미진을 피팅룸으로 데려갈 기세였다. 미진은 좀 퉁명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려는 점원의 모습에 용기를 내서 물었다.

“혹시요. 아까 봤던 그 원피스 같은 건 없어요?”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점원은 한숨을 쉬더니, 옷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짚었다.

“…언니.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그 원피스 같은 옷 입고 싶으시면, 최소한 55사이즈는 만들어서 오셔야 되요. 저희, 그리고 빅사이즈 매장도 아니라서, 마음에 드시는 옷 없으면 빅사이즈 전문점 가시는 게 좋아요.”

점원은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

할 말을 찾을 수 없는 바로 이 기분. 아침에 갈릭스테이크버거를 기분 좋게 먹고 있다가 남자 동기들한테 발각된 그 기분. 점원은 옷을 다시 옷걸이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아! 미진아!”

누군가 어깨를 툭 쳐서 보니 아람이다. 아람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어, 어. 아람아.”

“미안. 좀 많이 입어 보느라고. 많이 기다렸지? 너도 좀 고르는 것 같은데, 어때? 뭐 좀 봤어?”

“아니, 없어. 가자.”

언뜻 보니 아람의 쇼핑백 속에는 아까 봤던 검정색 가죽 재킷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원사이즈라고요.’

옆에서 아람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꾸 점원이 내뱉은 ‘원사이즈’ 라는 말만 머릿속에 맴돈다.

“어머, 저기 봐. 남자애들이다. 쟤네들도 오늘 강의 일찍 끝나서 쇼핑 왔나 봐.”

“뭐?!”

미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과연 맞은 편에는 진짜 아침에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남자 동기들 한 무리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

“어, 아람이다.”

“아람! 옷 보러 왔냐?”

“뭐 좀 샀어?”

누군가 아람을 알아 보고는 손을 흔들자 남학생들은 앞다투어 아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 옆의 미진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가 뭔지 확실히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서먹한 시간을 견뎌낸 미진은, 그들이 지나쳐 갈때 똑똑히 듣고 말았다.

“아람이는 근데 왜 저렇게 돼지국밥 잘 먹게 생긴 애랑 다니냐?”

“푸하하하.”

“진짜 돼지국밥 잘 먹을 것…….”

미진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마침 미진의 옆에는 전신 거울이 원망스럽게 서있었다. 튼실한 허벅지를 가리고 싶어 자주 입는 어벙벙한 짙은 색 청바지. 스포츠 브랜드에서 파는 후드 티에 운동화. 백팩. 그 옆에 선 아람의 체구는 정확히 미진의 세로로 반쪽이었다.

“미진아, 탕수육에 자장? 고고?”

발랄하게 묻는 아람의 말에 미진은 겨우 대답했다.

“아, 나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미안한데 먹기 힘들 것 같아.”

아파트 구석 벤치.

미진은 아람과 걷는 거리에서도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도 꾸역꾸역 삼켜 냈던 울음을 토해냈다. 괜히 집에 우거지상을 하고 들어가봐야 요새 다이어트에 혈안인 엄마의 잔소리에 더 우울해 질 것이 뻔했다.

“고등학교 때가 좋았어.”

누구 누구가 얼굴이 예쁘니, 몸매가 좋으니 하는 것은 여고시절에도 뜨거운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비교 당하는 일은 없었다. 미진은 딱히 나쁜 마음도 없었던 친구, 아람까지 미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더욱 속이 상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그치기 어려웠다. 미진은 급기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 꺽꺽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람이도 밉고, 동기들도 싫다. 하지만 제일 싫은 건 이렇게까지 무턱대고 살이 찐 자신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운동하는 것 역시 싫어하진 않았던 미진에게 고3 수험생활은 그야말로 폭풍같이 살이 오른 원망스러운 시간이었다.

고3의 다이어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친구들은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일단 굶으라고 했다. 적게 먹으면 빠진다고. 잠잘 시간도 아까운 고3에게 헬스클럽은 물론 사치다. 그렇다고 굶다니? 미진에게는 차라리 먹고 한바탕 실컷 뛰는 게 나았다. 한끼만 굶어도 맘속에서는 부글부글 짜증이 나고 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며 먹을 걸 내놓으라고 난리다. 왜 나는 먹을 걸 참지를 못할까?

“…요, 저기요!”

얼마나 훌쩍 거렸을까? 누군가의 목소리. 미진은 눈을 들었다.

“왜 이런 데서 울어요? 우리 옆집 학생 같은데?”

엄마가 좋아라 하던 옆집 새로 이사온 사람.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장난스러워 보였다.

“아, 아뇨…….”

황급히 미진은 눈물을 닦았다. 다 큰 여자가 울고 있으면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조용히 피해줄 일이지, 참견은. 미진은 당혹스러웠다.

“괘,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말해봐요. 이럴 땐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어느새 그는 이미 미진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갈색 안경 너머에 비친 눈을 마주하자 부담스러운 오지랖을 뿌리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머릿속에 엄마의 말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무슨 대학원? 전공이 뭐래?’

‘뭐였더라? 영양? 영양 뭐라 카든데.’

‘아~ 식품영양? 남자가?’

“…….”

미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식품영양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니, 먹는 걸 못 참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편으로는 궁금한 것도 많다. 왜 맛있는 것은 죄다 뚱뚱해지는 걸까? 다이어트는 꼭 굶어야 할 수 있는 걸까?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몇번을 망설이다 미진은 겨우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 줄곧 맴돌았던 의문. 아무에게라도 따지고 들고 싶은 심정이다.

“…식품영양…… 대학원 다니신다고…….”

“ 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양생리학 쪽이죠.”

“혹시 그럼……. kcal? 음식? 그런 거 잘 아시는 건가요?”

kcal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재미 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음식으로 섭취하는 영양소들이 몸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뭐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그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미진은 소리치듯 물었다.

“왜! 왜? 왜 맛있는 음식들은 먹으면 다 살이 찌는 건가요? 왜요?”

“…….”

미진의 말투에 잠시 그는 멈칫했다. 왜 맛있는 건 다 살이 찌는 거냐고?

그건 그, 백건우가 주변 사람들의 의구심을 자아내면서까지 식품영양학과로 진학을 고집했던 이유다. 지금이야 아주 모범적인 체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건우 또한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이름 대신 ‘백돼지’라고 불렸던 때가 있었다. 성이 백씨인데다가 피부도 하얀 편이었던 건우가 또래 가운데서 유독 통통했던 탓이다. 역시 미진과 같이 패스트푸드와 과자를 입에 달고 살았고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반찬 투정을 했던 건우다. ‘왜 맛있는 건 모두 살이 찌는 걸까?', ‘왜 엄마와 의사선생님은 맛없는 것만 먹어야 된다고 할까?’ 가 몹시 궁금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건우 어머니의 끈질긴 식단 조절과 건우의 피나는 노력으로 점차 살은 빠졌지만 그 궁금증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여학생’ 들이 주로 선택한다는 식품영양학과로 건우를 이끌었던 것이다.

“음! 이렇게 할까? 대학생 맞죠? 이름은 뭐예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건우는 가슴 앞에서 두 손을 한번 짝 부딪치며 말했다. 대답이 없는 건우를 보고는 너무 공격적으로 물은 것 같아 아차 싶었던 미진이 다시 주눅이 든 채 모기 소리로 답했다.

“…네. 한국대 1학년. 경영학과 최미진이에요.”

“ 어라? 한국대? 나 돈데. 난 건우라고 해요. 백건우. 거기 생활과학대 소속. 학사는 재작년에 졸업하고 지금은 석사 마무리 중이에요.”

미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제 보니 그는 까마득한 선배다.

“선배… 님?”

건우는 미진의 눈가에 말라 붙은 눈물자국의 이유를 더 묻지 않았다. 굳이 아까 왜 맛있는 것은 다 살이 찌느냐며 따지던 말이 아니더라도 통통한 몸매를 보면 새내기 여대생, 미진이 왜 울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말 놓아도 돼요?”

“네, 네! 선배님.”

“선배는 무슨, 같은 과도 아닌데. 오빠라고 해.”

“네? 에……..”

오빠라는 말에 미진이 눈을 깔며 어깨를 슬쩍 비틀었다. 친오빠인 동욱과 동욱의 친구들 말고는 딱히 오빠라고 불러본 사람이 없다. 같은 학교 선배를 오빠라고 하자니 뭔가 낯이 간지럽다.

“맛있는 건 왜 다 살이 찌느냐고 물었지?”

“…네! 왜죠? 너무 치사하잖아요.”

미진이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얼굴을 내려다보던 건우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고는 입술에 한번 침을 바르고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맛있는 건 도대체 왜 나쁘다는 걸까? 살 빼려면 꼭 안 먹어야 하나? 입에 자꾸 당기고 먹으면 행복하고 좋은데, 왜 끊어야 하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어. 다들 끊으라고, 나쁘다고 하니 참기는 참아보는데 하루를 못 넘기겠고. 간신히 하루 이틀 참으면 주변에서 맛있는 거 해 놓고는 하나만 먹어보라 하고. 한입만 먹어 볼까 했는데 어느새 배는 터질 것 같아. 먹을 땐 천국, 먹고 나니 죄책감. 이건 뭐 지옥도 아니고. 다른 사람 피해 안주고 착하게 사는 내가 고작 먹는 걸로 왜 이리 자책해야 하나 싶어 홧김에 또 마구 먹었다가 거울 보면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해서 한대 패고 싶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아니고 나중엔 어떤 마음이 진짜 내 맘인지 헷갈리기까지 해. 이쯤 되면 점점 심각해지지.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고 욕하고 무시하는 것 같거든. 그러다 보니 이놈의 사회는 왜 이리 외모지상주의인지 자신감 추락에 집 밖에 나가기도 싫어.”

…그 정도는 아닌데. 건우의 폭풍 같은 말에 미진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

벙찐 미진의 표정에 건우가 슬며시 웃었다.

“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네.”

“그럼 상황이 괜찮은데? 썩 나쁘지 않아.”

“지금 말씀하신 건……? 무슨 사례 연구할 때 만나신 사람......?”

건우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아닌데? 내 얘긴데?”

“에에?!”

건우의 대답에 미진은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인 숙희가 칭찬할 정도로 큰 키에 늘씬한 체형인 그다. 그런 그가 그랬다고?

“읏차!”

건우가 훌쩍 벤치에서 일어 서더니 미진 앞에 서서 허리 위에 두 손을 올렸다.

“너, 나한테 과외 받을래?”

의욕적인 건우의 표정. 미진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과외요?”

“다이어트 과외. 다이어트 고민으로 울고 있었던 거잖아. 옆집 오빠가 해결해 주겠다, 이거지~! 너, 행운인줄 알아. 내가 요새 졸업 논문도 끝내고 엄청 한가하거든.”

“…….”

미진은 눈을 껌벅거렸다.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어데, 대학원생이라 카던데. 어쩌면 그렇게 살갑고 말도 잘 붙이고. 느 오래비도 저래 잘 웃고 살살살살 하면 을매나 좋노?’

이건 살가운 게 아니다. 완전 오지랖 대마왕 아냐? 그리고 수학도, 영어도 아니고 다이어트 과외라니? 그게 뭐야.

미진의 떨떠름한 표정과 달리 건우는 주먹까지 쥐어 보이면서 눈을 빛냈다.

과거 남중, 남고를 다니면서 ‘백돼지’ 니 '화이트 피그’ 니 짖궃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온갖 놀림이며 괴롭힘을 당했던 건우다. 신기한 것은 뚱뚱했을 때에는 그런 놀림에 말 한마디 받아칠 용기가 생기지 않았는데 기를 쓰고 살을 빼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고 성적도 오르고, 다소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운동에 흥미를 붙이게 되니 자연스레 또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아져 고3 때는 반장까지 했다.

건우는 그 뒤로 살 때문에 고민하는 지인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변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살 때문에 의기 소침해있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힘이 닿는 한 그들을 돕고 싶었다. 다이어트를 연속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경험인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래봬도 이쪽으로는 실력 있다고. 경험자니까 믿을 만하지 않아? 수업료는 내영양학 기말 리포트 실제사례 분석에 20세 A양으로 등장하는 걸 허용해 줄 것. 어때?

“음…….”

그래도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다이어트 돌입이라니, 미진은 부담스러웠다.

엉엉 울기야 했지만, 살을 빼고 예뻐지고 싶지만, 수험생 전의 몸매를 회복하고 싶지만, 아람이나 남자 동기들 앞에서보란 듯이 걷고 싶지만, 그 명동 백화점에 있는 점원에게 당당하게 원사이즈 그 원피스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만. 아침의 꿀 같은 갈릭 스테이크 버거과 감자튀김, 저녁 식사 전 오후 시간 입이 즐거운 감자칩, 삼겹살, 빵……. 아니, 맛있는것이 아니라 먹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 할 수 있을까?

“…내 중고딩 때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건우는 굳이 미진의 해명 없이도 확답을 주지 못하는 그 마음을 안다. 자신을 비롯해 다이어트에 실패해본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일종의 두려움. 섣불리 시작했다가 무너지는 자신을 보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마주 보는 것이 이제는 무섭다.

“뭐였는데요?"

“…백돼지.”

“푸핫!”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미진은 앞에 서서 뚱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건우의 표정에 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성이 백씨. 거기에 허연 얼굴. 지금 보니 제법 쌀쌀한 밤바람 탓인지 볼 터치라도 한 듯 발개진 그의 두 뺨이 정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끼돼지 같았다. 알이 큰 갈색 뿔테 안경 탓에 이목구비가 언뜻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슬쩍 처진 눈에 흐릿한 인상이다. 코가 들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기냐?”

“아, 하. 죄송해요.”

미진은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싸늘했던 밤공기는 어느새 더웠다. 미진은 더 이상 그와 나누는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건우는 씩 웃더니 미진 앞에 쭈그려 앉아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중1때부터 고1때까지 백돼지였던 놈 별명이 지금은 뭔지 알아?”

“…뭔데요.”

“뭐긴. 지금도 백돼지야.”

“큭!”

건우는 킥킥거리는 미진에게 다시 말했다.

“별명은 쉽게 안 바뀌더라고. 근데 살 빼니까 말이야.”

“네.”

“성격은 변하더라. 나 엄청 소심했거든. 백돼지라며 애들이 막 돼지 몰자고 신발주머니로 때리고 그러는데도 그저 미적미적, 하지마~ 하지마~……. 그런데 지금 봐.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도 술술 걸잖아? 겁도 없어지고. 신기하게 성적도 올랐어.”

“…….”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인 거 알아. 그러니까 살살 조금씩 성공해보자. 알았지?”

“…네.”

미진은 웃었다. 건우가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허리에 두손을 짚고는 말했다.

“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스케줄하고 먹는 거, 30분 단위로 브리핑시작~!”

◀전형주 식품영영학 박사의 다이어트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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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약이라는 것은 크게 식욕억제제, 이뇨제, 열발생제, 포만감 유도제 등의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욕 억제로 인해 음식물 공급량이 인위적으로 줄어들면 몸에는 수분과 근육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근육과 수분은 지방보다 무거워서 체중계로 달아보는 몸무게는 줄어들게 되지요. 거울로 봤을 때에도 수분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신체의 부피가 줄어들어 허벅지나 팔도 가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체지방이 아닌 수분과 근육을 제거하면 기초대사량이 낮아져 조금만 먹어도 쉽게 살찌는 체질이 되는 데에 있지요.

다이어트의 정석은 저kcal의 균형 잡힌 식단을 지키고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 체지방을 연소시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근육운동을 통해 기초대사량을 높여 살이 안 찌는 체질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근육은 동일한 부피의 지방보다 약 4배 더 무겁습니다. 즉, 무게는 더 나가지만 근육이 훨씬 더 날씬해 보인다는 것이지요.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단순히 체중계의 눈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체지방이 얼마나 줄었는지, 근육은 얼마나 늘어났는지 복합적으로 체크해 보셔야 합니다.



글 구성 강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