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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이명박, 배우론…‘공범자들-저수지게임’ 극장가는 MB전성시대

“요즘 극장가는 정치인들이 먹여 살리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지만, 가볍게 웃을 수 없었던 건 이 우스개가 진짜 우스운 소리가 아니라는 걸 우습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당신들도 알기 때문이다. 천만 관객을 태운 영화 ‘택시운전사’ 에는 내내 전두환이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비록 가해자는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 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5·18 학살도, 발포명령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5.18 희생자를 또 한번 짓밟았지만,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쉽게 가라앉는 게 아니다. 그 암흑의 시간, 광주를 통과한 많은 이들이 살아있는 증인들이거늘.

전두환보다 스크린에서 잘 나가는 이는 MB,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영화 '공범자들' 과 '저수지 게임'이 극장가에서 절찬리에 동시 상영중이다. 그야말로 전성시대다. 20대 남자 배우들의 잇따른 군 입대로 허전해진 스크린 빈자리에 나타난 훌륭한 대체자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공범자들’은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공영방송 수난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MBC <PD수첩>의 간판 PD였으나, 부패한 권력을 파헤치는데 너무 유능했다는 이유로, ‘정말 그 이유로’ 해직된 최승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다시금 유능하게 권력의 민낯을 들춰낸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눈과 귀를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가를 밀도감 있게 그려낸 영화에서 MB는 공범자들의 ‘대부’로 조명된다. 메인 포스터 역시 그의 차지다.

‘저수지 게임’은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 정권의 비자금 저수지를 게임처럼 추적해 가는 미스터리 명량 다큐멘터리다. 주진우만큼이나 이명박과 인연이 막역한 김어준 딴지일보 충수가 제작했다. ‘저수지’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주진우와 김어준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시절부터 써온 표현으로 ‘비자금이 고여 있는 무덤’을 뜻하는 은어다. 또 하나는 ‘죽음’을 의미한다. “당신, 저수지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협박의 일종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 저수지이건 저 저수지이건, 영화가 겨누는 과녁의 중심엔 MB가 있다. 주연의 남다른 존재감이다.

두 다큐에서 확인 가능한 MB 연기의 핵심은 ‘유체이탈’(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나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말하는 화법)이다. 대개 자신을 지우고 극기를 감행하는 연기를 ‘메소드’라고 한다. MB는 메소드 연기의 달인인 셈인데, ‘공범자들’에서 압권인 것 역시 이 부분이다. 극 말미, “대통령님께서 언론을 망친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최승호 감독의 기습 질문에 “그게... 난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는데?”라고 대충 얼버무린 MB는 돌연 감독에게 “요즘 뭐 해요”라고 안부를 묻는다. 웃음 없인 볼 수 없는, MB의 팔색조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배우로 치면 MB는 성격파, 개성파다. 흥미롭게도 관객은 그가 나오면 자동반사적으로 웃는다. 이건, 그 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배우 오달수-유해진의 능력에 버금간다. 특히 MB는 리액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좋은 배우란, 무릇 리액션에서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하는데 MB의 리액션은 배꼽을 찌른다. ‘저수지 게임’의 한 컷. 고 김영삼 전 대통령 1주기를 하루 앞두고 국립현충원 묘소를 참배한 MB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몰려온다. 그 중엔, MB의 내곡동 특종을 터뜨린 주진우 기자가 있었다. 이때 MB의 질문이 주진우를 향한다. 그것도 발랄하게 악수 청하며 “어디 누구지?” “시사IN 주진우입니다” “......!!” 그 많은 기자 중에 주진우라니. 드라마를 아는 MB다. 그래서 MB 주연의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MB 주연의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개성파’ 배우들이 1+1도 아니고, 1+α(알파)로 등장한다는 것에 있다. ‘공범자들’ 속 조연(김재철-안광한 전 MBC 사장, 김장겸 현 사장, 백종문 현 부사장 등) 캐릭터가 상상 이상으로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 특히 최승호 감독의 질문을 피해 계단으로 줄행랑치는 안광한 전 사장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관객에게 던진다. 자존감을 찾아볼 수 없는 누추함. 이런 권력자와 하수인들에게 공영방송의 지난 10년이 휘둘렸다는 사실이 ‘웃프게’ 다가오기에, 더 절망스럽기도 하다.

여러모로 MB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들을 투척해 주고 계시는 중이다. 갑자기 등장한 반짝 스타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맥코리아’ ‘MB의 추억’(2012) 등에서 탄탄한 연기 기본기를 쌓은바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 올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모토로 영화제 정상화를 외치고 있는 ‘대종상 영화제’는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MB에게 상 하나 줘야 한다. 이 활약상을 눈감으면 안 된다. 지금 스크린은 MB 전성시대니까.



정시우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