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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푸드멘터리, '한국인의 밥상'

- 한국 전통음식 속에 건강한 먹거리의 길을 찾다

[푸드경제TV 조양제 전문기자] 먹방이 대세라고 하지만 조금 특이한 먹방이 있다. 젊은 연예인이 나와서 입 맛을 돋우는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닌데 2011년부터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 다음 주에는 또 어느 지역의 숨어 있는 먹거리를 보여줄까 궁금하게 하는 방송. 푸드와 다큐멘터리를 합성하여 ‘푸드멘터리’ 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한국인의 밥상> 이라는 방송이 그것이다.

이 방송은 음식 속에 담긴 한민족의 삶을 되돌아 본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대한민국 밥상의 가치를 재해석 하고 있다. 이 방송을 보면서 부모님 세대는 옛날 음식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하고, 젊은 세대는 자연 속에서 독특한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보면서 그 고장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하는 충동을 주었다. 다큐멘터리 프로가 시청률 7-10% 근처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밥상>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가난하고 배 고팠을 때 먹었던 음식들, 그 뒤에 숨겨진 애환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음식이 쇼가 아니라 철학이었고, 음식 속에 사람이 있었기에 감동을 주었다.

(사진) '한국인의 밥상' 은 고향의 맛, 자연의 맛, 시간의 맛, 시대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 사진출처 = KBS '한국인의 밥상' 홈페이지스토리텔링이 있는 감동적 먹방

갈비를 굽다가 눈밭에 묻어 두었다는 전설 속 고기구이, 이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쇠고기를 즐겨 먹어온 한국인은 쇠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하기 위해 쌀뜨물에 담그거나 차게 식혔다 다시 굽는 조리법을 발견했다. 방송에서는 이런 선조들의 조리법에 숨어 있는 과학성을 발견해 낸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리방식도 변해가고 입맛도 변해간다. 그러나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만의 음식 맛이 여전히 유지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음식 맛을 소개하는 방송이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인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남 화순에서 24살에 상경해 치열하게 젊은 시절을 보낸 김영필 씨는 외롭고 힘이 들 때 가장 기억나는 음식이 어머니가 끓여준 닭죽이었다. 70년째 두부를 만들고 있는 93세의 이명옥 할머니는 쓰러지신 시아버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두부를 지금도 만들고 있다. 황해도 출신의 95세 박태복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장이 열릴 때마다 먹던 선짓국을 그리워한다.

이 방송에는 이렇듯 맛의 뒤에 숨겨진 애달픈 역사와 사연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먹방이다. 그래서 먹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조금은 치기어린 감정일지 모르지만 방송을 진행하는 최불암 씨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방송을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숨겨진 맛을 다 맛보고 다니시지 않는가.

(사진)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는 최불암 씨 / 사진출처 = 한국인의 밥상 방송 캡처
(사진)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는 최불암 씨 / 사진출처 = 한국인의 밥상 방송 캡처
고향의 맛, 자연의 맛, 시간의 맛, 시대의 맛

작금의 계란사태나 먹거리 불안뉴스를 접하면서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전통 음식문화다. 한국인의 전통음식은 자연과 사람과 시간이 빚어낸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바다에서 막 건져낸 해산물이나 강원도 산골에서 채취한 흔한 산나물이라고 해도 그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과 만나 어떤 건강한 먹거리로 변하는지 볼 때 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철음식, 자연밥상, 대물림요리 등등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먹는 것만큼 자연이 준 선물로 풍요를 마음껏 누렸던 선조들의 지혜가 감탄스러웠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네가지 상다리로 차려진다. 첫번째는 고향의 맛인데 그 지역의 자연밥상을 소개하고, 두 번째는 자연의 맛의 제철음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세 번째는 시간의 맛으로 손맛의 대물림과 문화 변천사를 알게 하며 마지막 네 번째는 시대의 맛으로 전통음식에서 현대인들의 웰빙, 로하스의 길을 찾아준다.

맛있지만 영양가 높은 방송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지 않을까. 얼마 전 빅뱅의 태양도 이 방송을 즐겨 본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성시경은 당신이 최불암 선생님 역할이 되어 지역음식을 소개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사진) 최불암 씨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 은 시청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사진출처 = KBS 홈페이지
(사진) 최불암 씨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 은 시청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사진출처 = KBS 홈페이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찾은 건강 먹거리

바다가 그리운 날 갯벌이 빚어낸 참맛, 벌교꼬막이 입맛을 돋우고 고흥 갯장어에서 펄떡이는 힘의 원천을 느낀다. 오뉴월의 입맛을 지배하는 태안 꽃게를 보면 당장 빨간 꽃게를 먹으러 달려가고 싶어진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보리밥 이야기, 가슴 시린 함경도 실향민의 밥상, 자연으로 담아 맛으로 먹는 사찰음식 등을 보면 독소에 위협받는 현대인들에게 건강식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 지방 곳곳에는 건강한 먹거리라 넘치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데 우리는 너무 먼 길을 돌아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평생 동안 8만2천500번의 밥상을 차린다고 한다. 그 밥상 중에 독이 되는 밥상도 있고 약이 되는 밥상도 있을 것이다. 약이 되는 밥상은 <한국인의 밥상> 에 있고 자연 속에 다 숨어 있다.

우리 전통음식들을 보면 자연 속에서 흔한 재료지만 시간과 손맛이 어우러져 자기 치유력을 높이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한국인의 전통 식습관은 세계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이제는 서양 사람들도 우리 식습관을 따르려 하고 있다. 어떤 걸 먹어야 할지 점점 불안해 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우리 전통음식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 한국인의 밥상 > 진행자인 최불암 씨는 지난 7월 20일 방송에서‘몸이 기억하는 여름의 맛, 삼계탕과 물회' 편에서 이런 말을 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지만, 삶의 현장은 그보다 더 뜨겁다" 며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 여름을 날 수 있는 건, 굳이 고민하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몸이 기억하는 맛이다. 더위를 물리치는 지혜의 밥상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한국인의 밥상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그 지혜는 단순한 레시피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온 그 맛과 영양을 다시 우리 도시인들의 식탁 위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큰 기대일까.



조양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