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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새를 사랑한 화담(和談) 구본무

탐조인의 지침서 ‘한국의 새’ 발간
트윈타워 난간에 둥지 튼 ‘황조롱이’ 새끼 낳도록 돌봐

[FETV(푸드경제TV)=김수민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한지 오늘로 9일이 지났다. ‘재계의 큰 별’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와 관련된 사업‧스토리‧경영승계 과정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사화됐다. 현 시점에서 구 회장과 관련된 이슈보다 구광모 LG전자 상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본무 회장의 이름이 우리나라와 재계의 역사에 남긴 울림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간편하게 휴대하여 탐조활동에 동반할 수 있는 조류도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구 회장이 이름을 남긴 것은 비단 재계 뿐만은 아니다. 구 회장은 대기업 총수로는 드물게 ‘탐조(探鳥)’를 취미로 즐겼다. 발간사에서 알 수 있듯 새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은 이미 많은 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구 회장은 2000년 12월 LG상록재단을 통해 ‘한국의 새’를 출간하며 국내 탐조활동에 새로운 변곡점을 써냈다.

 

한국의 새는 당시 국내 최초의 그림으로 된 조류 도감이었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발간된 도감과 일부 학자들이 발간한 사진 도감을 병행해 사용해왔다. 당시 한국에는 새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세밀화 화가가 없었기 때문에 상록재단은 일본의 새 도감을 그린 타니구치 타카시의 그림을 실어 도감을 완성했다.

 

한국의 새는 북한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기록된 모든 조류를 망라했으며 21목 80과 541종을 수록했다.(개정증보판)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을 적용해 만들었으며 각 종별로 수컷, 암컷, 어미새, 어린새 등 새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부분을 잘 잡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새와 관련된 구 회장의 일화도 유명하다. 구 회장은 여의도 LG트윈타워 30층 집무실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수시로 한강 밤섬의 야생 조류를 관찰했다. 1996년에는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장면을 처음 발견하기도 했다.

 

1999년 구 회장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트윈타워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특별보호를 지시하기도 했다.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황조롱이 새끼 6마리가 모두 부화에 성공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많은 사람들이 새를 사랑하고 탐조활동을 즐기며 자연 환경과 생태계의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펴낼 당시 구 회장의 소망이 담긴 말이다. 그의 소망대로 최근 ‘한국의 새’ 판매량이 3.5배나 뛰었다고 한다. LG상록재단에 따르면 4월 ‘한국의 새’ 판매량은 46권이었지만 이달 29일 기준 169권으로 집계됐다. 비록 판매량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유지를 엿보려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향후 재출판 계획은 없다.

 

구 회장은 평소 본인이 아꼈던 숲과 나무 아래 잠들었다. “폐를 끼치기 싫다”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됐으며 외부 조문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재계의 큰 별이었던 고인과 인연을 나눴던 정재계 인사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구 회장의 유해는 경기 곤지암의 ‘화담숲’ 인근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그가 수년에 걸쳐서 완성한 생태 수목원이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和談)은 구 회장의 아호다. 예의 바르고 소탈했던,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재벌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깨버린 구 회장의 퇴장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