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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신간 소개]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푸드경제TV 이정훈 기자] 진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지키려는 한 지식인의 고독한 자기탐구의 기록. 유창선 작가의 신간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가 나왔다.

저자 유창선은 오랫동안 시사평론가로 방송과 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은 방송에서 배제됐다.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한 채 세상이 원하는 말을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 세계와 불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그에게 인생의 좌표였다. 자신의 말과 글, 사는 모습이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상과 불화하는 쪽을 선택한다.

느닷없이 찾아온 고독의 시간, 그는 그동안 바깥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게 된다. “언제까지 외부 환경에 휘둘리는 삶을 살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어째서 나 아닌 사람들이 내 삶을 결정짓는단 말인가.” 시대를 무기력하게 한탄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힘을 스스로 키우기 위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수험생처럼 동네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책에 파묻혀 보낸 고독한 시간이었지만 “진즉에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2500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들도 하고 있었다. 삶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여는 글’ 중에서

저자는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진실을 지키고 존엄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한 지식인의 자기 탐구 기록이기도 하다. 책 읽는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위대한 사상가와 온몸으로 만날 때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책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니체,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카프카, 움베르토 에코, 롤랑 바르트 등의 저작들은 혼자서 독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저자는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 위에서 넓고 깊게 읽어냄으로써 독자들의 친절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덕분에 독자는 꼭 읽어보고 싶었지만 난해해서 포기했거나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주옥같은 명저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저자가 고른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유’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인류사의 엄청난 비극에서부터 최순실 게이트까지 사유하지 않을 때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목격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유는 비판이고 행동이다.

사유하는 힘을 일깨워주는 책을 만난 사람은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절망의 시대에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품격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리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사유하게 된다. 사유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품격을 지키고, 누구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혼자 고독 속에서 하는 사유는 결국 활동적인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싸움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런저런 욕망의 유혹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문장 하나에, 방송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에 진실이 담겨 있다. 때로는 하나의 문장, 한 마디 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양심이고 힘이다. 소소한 과정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자기의 진실을 지켜냈을 때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본문 중에서

우리 모두가 앎과 삶의 일치라는 숙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품격 있고 존엄한 삶은 자신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우고 일상에서 진실을 지켜나갈 때 가능하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길이다. 싸우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