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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다이어트 성공기 연재] (7) 야식을 위한 변론

자정이 넘은 시각.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숙희가 부리나케 쫓아 나갔다. 영훈이다.

“동욱 아부지.”

“뭘 안자고 기다려? 괜찮아, 내가 할게. 술 다 깼어.”

겉옷을 받아 주려는 숙희에게 손사래를 치며 영훈은 옷장에 옷을 걸었다.

“꿀물이라도 쪼매 타줄까요?”

영훈의 목소리가 착 가라 앉은 것이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내심 아침부터 짜증을 내고 빈속으로 그를 보낸 숙희는 안 그래도 미안하던 차에 더욱 마음이 쓰렸다. 그런 숙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훈은 피곤한 얼굴로 숙희에게 웃어 보였다.

“됐어. 밤에 무슨.”

영훈은 자신의 잠옷을 찾아 내주는 숙희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새치가 희끗희끗, 가슴보다 더 나온 것 같은 배, 두리 뭉실한 엉덩이. 막 스무 살을 넘긴 발랄하고 구김살 없었던 예쁘장한 시골처녀는 30년을자신과 함께 부대끼고 어느새 이렇게 푸짐한 몸매의 50대 아줌마가 됐다. 영훈은 그 꽃 같았던 얼굴에 스쳐간 세월의 흔적이 야속했다.

“동욱 엄마.”

“와요.”

“다른 동네 아줌마들처럼 문화센터 같은 거라도 다녀 보는 게 어때? 당신 처녀적에 왜 꽃꽂이도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랬잖아.”

“문화센터요? 난데 없이.”

아무래도 박 주임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탓 인듯 했다. 영훈은 새삼 가족들의 얼굴들이 다시 보였다. 그중에서도 집에서 식구들 수발로 평생을 보낸 아내, 숙희가 재미있는 것을 하며 즐기고 살았으면 했다.

“혼자 가기 그러면 미주 엄마랑 다니든, 하여튼 뭐 당신 좋은 거 하나 해. 그런거 몇 푼이나 한다고. 당신도 좀 누리고 살 때 됐어.”

숙희는 영훈의 마음 씀씀이에 요새 이랬다 저랬다 롤러코스터를 타던 마음이 잠깐 가라 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서 숙희의 눈길을 끌었던 주민센터에서 모집하는 여성합창단 포스터를 생각해냈다.

“노래하면 또 김숙희 아니었나. 당신도 알제?”

금세 신이 난 숙희를 보고 영훈은 집에 들어오기 전 거리를 걸으며 다짐한 것을 다시 떠올렸다.

“여보. 내일부턴 30분 일찍 깨워줘. 당신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려고.”

“잉? 와요?”

“아니, 그냥. 이제부턴 좀 일찍 가려고.”

영훈은 더 이상 대답 없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괜히 다이어트 한답시고 박 주임의 이야기까지 꺼내며 숙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성공하면 숙희에게도 함께 하자고 해야지. 영훈은 눈을 감았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이 들리는 새벽 1시, 영훈의 집 거실. 그러나 거의 매일 밤 이 정적을 깨는 이가 있다. 동욱이다.

‘지이잉.’

동욱의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기다리던 ‘그' 다. 인터넷을 통해 배달요청, 배달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집 앞에 오시면 문자를 주세요. 축적된 경험상,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면 잠귀가 밝은 숙희가 깨 폭풍 잔소리를 할 것이 자명하다. 문자 알림은 이를 피하려고 동욱이 생각해 낸 꼼수인 것이다.

[주문하신 찜닭입니다. 지금 문앞 입니다.]

동욱은 발끝으로 살금살금 거실을 가로질러 가만히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여기, 현금이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혹여나 큰 소리가 날까, 긴밀히 속닥거리는 두 남자.

‘쿵!’

헉! 밤바람에 생각보다 문이 세게 닫혔다. 누가 보면 마약이라도 밀수라도 하는 듯, 안방의 동향을 살피는 동욱의 눈빛이 날카롭다. 다행히 부모님은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비닐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소중히 따끈따끈한 찜닭을 받쳐 들고 발끝을 다시 세운다. 빛이 새어 나오는 자신의 방문을 살짝 열고 쏙 사라지면 미션 성공.

“휴우.”

동욱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새 일이 많다. 일이 많을 때는 자연히 밤샘 작업을 하기마련. 밤샘에는? 무조건 야식이지. 동욱은 책상 위에 찜닭을 위한 세팅을 마쳤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모니터에 떠 있던 작업 화면을 치운다. 그리고 평소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동영상을 전체화면으로 설정하면 야식 먹을 준비 완료다.

날마다 치킨이었던 요즘, 오래만에 먹는 찜닭이 참 별미다.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살, 달달한 당면, 찜닭 요리에 들어간 재료들은 짭짤하고 달콤한 것이 심지어 채소 마저도 맛있다.

한동안 정신없이 먹던 동욱은 문득 컴퓨터 화면의 메신저 창이 깜박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클릭해보니 동네 친구, 미주다. 미주는 비록 여자지만 스스럼없이 지내는 소꿉친구다. 엄마들끼리도 친한 사이라 더욱 남매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반 짝꿍으로 시작된 인연은 아파트 아랫집, 윗집으로 벌써 10년도 넘게 이어져 왔다.

(미주) 최동욱이~! 이 시간까지 뭐해?

새벽 2시가 다 돼가는데, 안자고 뭐 하는지는 몇 시간 후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직장인에게 더 궁금한 사항이다.

(동욱) 너야말로? 내일 출근 안 하냐?

(미주) 내일 연차야. 몸이 골골대. 하루 좀 쉬어야지.

아직 젊은 애가 몸이 골골거린다니. 동욱이 혀를 차며 한마디 하려는 순간 미주가 보낸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주) 야, 너 또 야식 시켰냐? 돼지야, 그만 좀 먹어라, 좀.

(동욱) 이 아줌마가? 너 내 방에 CCTV 달았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안방에 있는 부모님에게도 들키지 않은 특급 작전이었는데.

(미주) 내 방에서 아파트 입구 다 내려다 보이잖아. 지금 배달 오토바이 하나 나가네. 딱 너지, 너.

(동욱) 야, 나 밤새 일하거든? 헬스장도 다니는데 이 정도는 먹어줘도 괜찮아.

발에 채는 게 야식을 위한 변명거리다. 헬스장도 매일 다니고, 밤새 일도 한다. 식사량도 야식 외에는 하루 1~2끼 이상 챙겨 먹지 않는다. 아침은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늦은 점심을 혼자 먹는 일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삼시세끼 먹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평균 식사 횟수라고치면 동욱에게는 매일 먹는 야식을 끼워 넣어봤자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미주) 너 그러다 진짜 건강 망쳐.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서 남들 일할때 일해. 그러다 죽는다, 너. 고딩 때 만해도 최동욱 꽤 마른 편이었는데 말이야. 너 요새 얼마나 나가냐? 90kg 넘지? 91? 92? 왔다 갔다 할거 같은데?

“…….”

왜 남의 몸무게는! 눈썰미가 좋은 미주가 얄미울 정도로 정확한 숫자를 짚어냈다. 이쯤되니 동욱은 슬슬 짜증스러웠다. 야식을 먹는 즐거움 한켠에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은 죄책감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입맛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여자친구도 아닌 주제에 미주는 유독 잔소리가 많았다. 특유의 야무지고 붙임성도 좋은 성격 탓에 까칠하고 매사에 삐딱한 자신과 비교가 되어 엄마인 숙희에게 등짝도 많이 얻어맞은 동욱이다.

(동욱) 야, 몸매 갖고 잔소리할 거면 소개팅이나 시켜주면서 해. 난 일하러 간다!

(미주) 싫은 소리 좀 했다고 삐치기는. 그래라, 그래. 나도 이제 자야겠다. 수고~!

미주와 이야기를 하느라 모처럼 보는 드라마 영상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어디까지 봤는지 이리저리 돌려보다 때마침 걸리는 버퍼링.

“에이, 씨.”

동욱은 마우스를 내팽개쳤다. 아직도 찜닭은 따끈따끈한데 죄책감은 이미 한 가득 밀려왔다. 다 미주 탓이다. 잔소리꾼 정미주. 똑순이는 무슨, 헛똑똑이지.

“…….”

여전히 매콤달콤한 냄새. 동욱은 오늘도 항복을 선언했다. 푸짐한 살코기를 한 입 가득 문다. 정체 모를 죄책감만큼이나 유혹적인 야식. 미주의 잔소리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동욱이 밤을 새워 일하기 시작한 이유는 외주인력으로 투입되는 프로젝트의 빠듯한 납기 때문이다. 일정관리에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초반엔 설렁설렁하다가 코앞까지 납기가 다가오고 나서야 막판에 밤을 새워 몰아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점차 낮과 밤이 바뀌고 규칙적으로 밥을 챙겨 먹는 날이 줄어갔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에 야식을 시키게 됐다. 프리랜서로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런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1년하고도 반이 넘어간다.

친구들도 많지 않고 애인도 없으니 낮 시간에 외출할 일 역시 적은 동욱에게 안성맞춤인 생활 방식이었다. 딱히 스트레스를 풀 곳도, 즐기는 취미도 없는 그에게 야식이란 삶의 낙.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즐거운 고민이었다. 야식 없는 밤샘은 없다. 밤샘이 없으면? 일도 못 하잖아. 정미주, 아무것도 모르면서. 동욱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전형주 장안대 식품영영학과 교수의 다이어트 컨설팅 - 위장까지 야근 시키지 말자

일본 니혼대학 약학부 연구진이 발견한 것으로써 지방을 축적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BMAL1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낮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밤에 많이 만들어지는데 오후 3시쯤에 가장 적고 저녁부터 증가하여 밤 10시~새벽 2시에 절정에 이른다.

밤에 지방을 만들어 내는 가장 바쁜 물질이다. 비만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이 단백질의 양은 많다. 이 단백질이 무서운 것은 지방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에도 지방을 축적한다는 점이다.

또한 밤 시간에 우리의 몸은 이미 섭취한 것을 몸에 동화시키려는 ‘동화 주기(밤 8시~새벽 4시)’ 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간에 ‘섭취’ 가 일어나면 오히려 지방 축적이 바쁘게 진행된다고 한다.

또한 동화 주기가 뒤로 밀리면서 오전 시간인 ‘배출 주기’ 가 짧아져 노폐물과 독소도 배출되지 않는다. 섭취 주기인 낮에 먹고 밤 시간인 동화 주기엔 먹지 않는 것이 우리 몸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글 구성 이정미 기자